AI 과도기, 대학 조별과제는 어디로 가야 할까

이번 3학년 1학기, 저는 학교랑 개발 일을 병행했습니다. 학교에선 조별과제를 했고, 회사에선 AI로 서비스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학기에 양쪽에서 "협업"이라는 단어를 쓰는데, 그게 완전히 다른 걸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회사 얘기를 먼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다닌 곳은 소위 AX 팀이었습니다. AI로 일하는 방식 자체를 다시 짜는 조직입니다. 몇 년 전 다들 하던 DX(디지털 전환)의 다음 버전쯤 되는 셈입니다. 직무명은 AI Native Software Engineer였는데, 솔직히 저도 처음엔 이게 무슨 일을 하는 건가 싶었습니다. 막상 해보니 단순했습니다. 코드를 직접 치기보다는, AI한테 뭘 시킬지 정하고 그 결과를 판단하는 쪽이었습니다. 보일러플레이트나 잔버그는 에이전트한테 넘기고, 저는 "이 문제를 AI로 어떻게 풀지", "얘가 뽑아온 것 중에 뭐가 맞는지" 이런 걸 붙잡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혼자서도, 예전 같으면 팀이 달려들었을 규모의 일이 굴러갔습니다.

그러다 조별과제 방에 앉으면 딴 세상이었습니다. 넷이 모였는데 누군가는 git 충돌을 세 시간째 붙잡고 있습니다. 그것도 사실 몇 줄짜리, 별것도 아닌 충돌이었습니다. 회사에선 몇 초면 끝날 일입니다. 처음엔 그냥 "학교니까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근데 학기가 끝날 즈음엔, 이게 좀 더 근본적인 문제 같았습니다.

미리 말해두면 저 조별과제 싫어하던 사람 아닙니다. 나름 열심히 했습니다. 근데 왜 이렇게 이상해졌는지 자꾸 곱씹게 됐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진짜 이유는 좀 더 밑에 있었습니다.

일단, 손을 나눌 이유가 사라졌습니다

조별과제엔 원래 쓸모가 하나 있었습니다. 누군가는 코드를 짜야 하는데 혼자 하기엔 양이 많으니까, 손을 나눕니다. 프론트 둘, 백 둘. 밤새 API 붙이고 충돌 풀고. 비효율이어도 "일을 나눈다"는 명분은 있었습니다.

근데 제가 회사에서 매일 본 게 딱 그 명분이 무너지는 장면이었습니다. 이제 한 명이 프론트, 백, 인프라를 다 리드하고, 예전엔 며칠씩 걸리던 삽질이 몇 초면 끝납니다. 손이 그렇게 여럿 필요하지 않습니다. "일이 많으니 나눈다"는, 조별과제의 거의 유일한 실용적 이유가 그렇게 조용히 사라진 셈입니다.

그래서 남은 건, 협업이 아니라 격차였습니다

손 나누기가 의미없어지면 좀 묘한 일이 생깁니다. 조별과제 결과물이 넷이 힘을 합친 결과가 아니라, 그 조에서 AI를 제일 멀리 쓸 줄 아는 한 명이 뽑아온 결과가 돼버립니다. 나머지 셋은 그게 어떻게 나온 건지도 모른 채 이름만 올라갑니다. 실력을 나눠 배우는 게 아니라, 운을 나눠 갖는 셈입니다. 우리 조에 그 한 명이 있느냐 없느냐.

근데 그 "한 명"과 나머지의 차이가 뭐였을까요. 처음엔 프롬프트 잘 쓰는 정도의 스킬 차이인 줄 알았습니다. 아니었습니다. 훨씬 밑이었습니다.

진짜 문제는 '가능성을 본 적이 있느냐'였습니다

한번은 조원한테 "이거 그냥 에이전트한테 시키면 되잖아" 했더니, "그게… 돼?"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 순간이 좀 오래 남았습니다.

그 차이는 실력이 아닙니다. 그런 게 가능하다는 걸 아예 본 적이 없는 겁니다. 자동완성으로 오타 고치는 게 AI의 전부인 사람한테는, 에이전트가 며칠 만에 서비스를 짜는 세계 자체가 없습니다. 있는 줄을 모르니까 시도할 생각도 나지 않습니다.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셈입니다. (unknown unknowns)

돌아보면 회사 팀엔 이런 사람이 없었습니다. 다들 그 천장을 한 번씩은 봤기 때문입니다. 근데 이게 누굴 탓할 일은 아닙니다. 누가 옆에서 "이렇게까지 돼"를 딱 한 번만 보여줬어도 달랐을 텐데, 하필 그 한 번이 사람마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다. 문제는, 조별과제가 이 격차를 "협업"이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린다는 겁니다. 천장이 서로 다른 넷을 묶어놓고 같이 배우는 것처럼 포장합니다. 실제론 한 명이 하고 셋이 구경하는데 말입니다.

그러니 고쳐야 할 건 조별과제가 아닙니다

"그래도 사람들이랑 부대끼면서 협업을 배우잖아" 할 수 있습니다. 근데 우리가 조별과제에서 진짜 배운 협업이 뭐였나 떠올려보면… 잠수 탄 팀원 몫까지 대신 하는 법, 무임승차하는 사람한테 화 안 내는 법. 능력이라기보단 그냥 버티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습니다.

물론 협업 자체가 죽었다는 얘긴 아닙니다. 회사에서 제가 겪은 협업, 서로 다른 걸 깊게 아는 사람들이 필요할 때 붙는 그런 협업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문제는 아무것도 안 가진, 뭐가 가능한지도 아직 못 본 사람들을 시간표 겹친다는 이유로 묶는 데 있습니다.

그래서 포맷을 어떻게 잘 고치느냐는, 사실 좀 곁가지 같습니다. 역할을 리뷰어나 대항전으로 바꿔볼 수도 있습니다. 근데 뭐가 가능한지 본 적 없는 사람은 남이 만든 걸 리뷰하지도 못합니다. 정상이 뭔지 알아야 허점도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써놓고 보니 좀 세게 들리기도 합니다. 조별과제로 좋은 기억 남은 사람도 분명 있을 겁니다. 근데 적어도 제가 이번 학기에 본 건 그랬습니다. 그리고 이게 다, 지금이 과도기라서 벌어지는 일 같기도 합니다. 몇 년만 지나면 "에이전트로 이만큼 된다"를 다들 당연하게 알 텐데, 그럼 이 격차도 자연스럽게 옅어질 겁니다. 지금은 누구는 그 세계를 이미 봤고 누구는 아직 못 본, 딱 그 사이인 셈입니다. 조별과제가 유독 이상해 보이는 것도, 낡은 포맷이 하필 이 과도기랑 정면으로 부딪혀서입니다.

그렇게 보면 학교가 할 일은 좀 다른 데 있는 것 같습니다. 조별과제를 어떻게 고치냐가 아니라, 이 과도기를 다 같이 빨리 건너게 하는 것입니다. "AI로 여기까지 되는구나"를 모두가 한 번씩은 보게 하는 것. 회사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게 먼저 되고 나서야 협업이든 대항전이든 의미가 생기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저부터도 다음 학기엔, 조원들한테 그 "한 번"을 보여주는 걸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그게 먹힐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일단, 그렇게라도 해볼 생각입니다.